미영의 과거7 회색 비닐 봉투가 마구잡이로 찢겨 있었다. 현관문을 닫으며 거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애들에게 큰소리로 물었다. "우편함에 있던 책 누가 갖고 왔어?" 답이 없다. "야들아, 엄마 책 왔던데, 갖고 들어온 사람 없어?" "무슨 책이요?" "이밥차! 이번 달 거 꽂혀있는 거 나가면서 봤는데" 서로서로 쳐다보며 눈짓을 주고받더니 둘째가 "우리는 안 갖고 왔어요."한다. "진짜? 잠깐만 기다려봐"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 출입문 바로 옆에 있는 우편함으로 곧장 걸어갔다. 없다! '누군가가 갖고 갔다!' 지난 달 '어린이 과학동아'가 발간 1주일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아 고객센터에 확인 후 다시 받았던 일이 생각났다. 훨씬 이전에도 책이 오지 않았던 경우가 여러번 있었고. 하지만 배달 중에 일어난 사고라고 생각했지 우리집 우편함에서 사라졌을 것이라고.. 2022. 5. 19. 살면서 버킷 리스트를 매년 작성하지는 않았다. [1. 혼자서 세계 여행하기 2. 크루즈 여행하기 3. 운전해서 전국 일주하기 4. 미국으로 친구 만나러 가기] '버킷 리스트' 병실에서 만난 두 노인이 죽음을 선고받은 자신을 위해 죽기전에 꼭 해보고 싶은 항목을 작성하고, 기적처럼 실행하며 행복한 죽음을 맞는다는 영화 속 그것. 난 이것을 40대 중반에 처음으로 썼다. 깜깜한 터널 속 같은 내 인생이 불쌍해서 다이어리의 첫 장에 보란듯이 적었었다. 아이들의 성장은 너무 먼 미래이고, 지금의 내 하루하루가 소모적이란 느낌에 우울하던 때였다. 남편과 아이들은 성장하는데 나는 무얼 하고 있는지 초라해지는 자괴감. 자식 입에 들어가는 음식들이 내 시간과 내 청춘을 깎아 만든 것 같은 서글픔과 두려움. 애들이 성장하는 동안 나는 쪼그라들며 죽어갈 거라는 공포... 2022. 1. 12. 내가 아는 나의 사랑은 찐 짝사랑이었다. 12월에 접어들면 새해를 맞을 준비로 마음이 바빠진다. 한 해를 보내며 내가 잊고 처리하지 않은 일은 없는지, 감정적으로도 후회와 미련을 모두 비워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병적인 집착이 조바심을 키우며 마지막 한 달을 허둥대게 한다. 제일 먼저 가계부를 주문한다. 가계부 준비로 시작한다고 하면 나를 보는 시선들이 달라진다. '이 사람은 매사에 꼼꼼한 성격이겠구나.' 고백하자면, 내 가계부 기입 실력은 그다지 훌륭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평균 이하로 형편없다. 펼쳐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두꺼운 노트 크기의 금전 출납부라는 것을. 꼼꼼히 계획하고, 하루하루 아껴, 한 해가 마칠 때쯤 목표를 달성하는 기쁨의 과정은 없다. 하루 총지출과 그 내역... 수입이 일정치 않아도 지출은 일.. 2021. 11. 12. 패트와 매트 제목을 읽고 퍼뜩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면 당신은 요즘 가장 핫한 MZ세대가 분명하다. 혹은 그들의 부모이거나. 나는 후자다. 더 정확히는 모. 예전에 읽었던 책을 찾으려고 박스를 뒤적이다 이걸 찾았다. 아이들 짐 정리할 때 비디오테이프는 모두 버렸는데 하나가 영화DVD 박스에 섞여 있었다. 새삼 울컥 했다. '이게 남아 있었구나' 20여년 전 '무슨 내용이냐'고 애들 친구 엄마들이 물어봤을 때 이렇게 대답했었던 기억이 난다. "두 바보 이야기예요. 덩치는 어른인데 애들보다 더한 바보" 세상 순진한 바보들이다. 이동식 쓰레기차로 직접 쓰레기를 처리한다고 나섰다가 마을 길을 쓰레기장으로 만든 에피소드가 기억난다. 놀랍게도 결과가 잘못되었다고 슬퍼하거나 화내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대사 하나 없이 그들은 자신들.. 2021. 8. 16. 이전 1 2 다음